설 연휴 보람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나요? 명절은 가족이나 친인척들과의 만남을 통해 유대와 관계를 확인하고, 행복과 화합을 함께 지향하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이 특별한 시간에 감사와 칭찬으로 서로 북돋우고 격려한 사람들에게는 설 연휴의 기억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국립국어원이 600여 명을 대상으로 ‘배우자·부모·자녀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조사해보니 한국인들이 집에서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잘했어”, “수고했어”와 같은 감사와 칭찬이었다고 합니다(‘2015년 국어정책통계연감’). 부부는 배우자에게 듣고 싶은 말로 81%가 ‘수고에 대한 감사’를 꼽았습니다. 그 다음은 ‘능력에 대한 칭찬’(11%), ‘성격에 대한 칭찬’(5%) 순이었습니다.
부모들도 71%가 자녀에게 ‘수고에 대한 감사’를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능력에 대한 칭찬’은 14%, ‘성격에 대한 칭찬’은 7%에 불과했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노력에 대한 칭찬’(52%)을 가장 듣고 싶어 했습니다. 행동, 성적에 대한 칭찬을 바라는 비율은 각각 27%와 10%였습니다. 어느 세대나 가장 듣기 싫은 말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였습니다.
다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인데 감사와 칭찬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요? 왜 하필 고래인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에는 쇼를 위해 범고래를 조련할 때 잘했다고 칭찬해주니 고래가 더 잘하더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고래는 사실 소통능력이 뛰어난 동물이지만 그렇게 큰 동물도 칭찬은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퇴계 이황은 '훈몽(訓蒙)'이라는 시에서 "큰 칭찬이 회초리보다 오히려 낫다"[大讚勝撻楚]고 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칭찬, 바꿔 말해 관심과 격려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칭찬을 실천하는 사람이나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부모나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일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데도 우리는 칭찬보다 비판 또는 비평에 익숙합니다.
특히 신문기자인 내 경험을 뒤적여보면 남의 틀린 것이 너무도 빨리 눈에 들어와 지적질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여긴 틀렸겠지, 하고 살펴보면 틀림없이 틀려 있는 경우가 많아 틀림없이 지적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간혹 글 잘 썼다, 기사 좋다고 칭찬한 경우도 있지만 나는 그 사실이 생각도 나지 않고 당사자만 기억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다 점점 세월이 흐르고 늙다 보니 후배를 칭찬하는 게 좋은 선배이며 크고 작은 조직의 장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유능하고 똑똑하지만 후배를 칭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조직을 맡아 끌어가는 데스크가 되기 어렵고, 결국 혼자서 하는 일을 맡게 되더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최근에 알게 된 것은 남을 칭찬하는 사람을 칭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말로 칭찬하는 게 좋은가? 진심을 담는 게 중요하니 특별하고 화려한 언사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직접적이고 단순할수록 효과가 큽니다. 그래도 뭔가 멋진 말을 해주고 싶고, 칭찬하는 데 좋은 말을 알아두고 싶어집니다. 고전을 읽다 보면 특히 그런 말을 갈무리해두고 싶어집니다.
중국 후한에서 동진(東晉)시대에 걸쳐 사대부들의 일화를 기록한 ‘세설신어(世說新語)’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남송(420~479)의 무제 때 유의경(劉義慶·403~444)이 편찬한 이 책이 좋은 점은 거의 모든 인물 평가가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말한 것입니다. 훌륭한 품격과 재능을 칭찬하고 기리는 것을 말하는 ‘상예(賞譽)’편에서 몇 개를 뽑아봅니다.
‘곧게 뻗은 소나무 아래에 이는 바람처럼 엄숙하다’, ‘구름 속에 있는 백학’, ‘큰일을 맡는 데 능하고, 자신을 감추는 데 뛰어나다’, ‘밝게 훤히 트인 것이 백 칸짜리 집과 같다’, ‘형은 풍년의 구슬, 동생은 흉년의 곡식’, ‘그 줄기는 구름 위를 뚫고 올라가지만 그 지엽(枝葉)을 사방에 퍼뜨리려 하지는 않는다’, ‘그가 술 마시는 걸 보노라면 집에서 빚은 술을 다 내놓고 싶어진다’, ‘누구나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하는 것(장점)을 반드시 갖고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누구나 가져서 안 되는 것(단점)은 반드시 갖고 있지 않다.’
자기 아들을 “풍격과 기개가 날로 향상되니 나의 근심을 풀어주기에 충분합니다”라고 칭찬한 사람도 있습니다. 남들 앞에서 아들을 칭찬하고 자랑하는 것은 예가 아니지만, 이 경우는 사회나 국가에 기여할 인간적 능력이 향상되는 데 대한 객관적 평가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임금이 어떤 벼슬의 적임자를 묻자 서슴없이 자기 아들을 추천한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이른바 ‘기해거자(祁奚擧子)의 고사’는 이렇게 아버지의 눈이 밝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요즘 끔찍한 뉴스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아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시신을 훼손하고, 딸을 때려 숨지게 하고도 태연하게 살면서 온갖 거룩한 말을 해온 부모는 대체 인간일까 짐승일까? 그들이 자랄 때 누군가가 따뜻하게 칭찬해주며 격려하고 보살폈더라면 그런 인간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용납 못할 비리와 부정,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모두 칭찬에 굶주리며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칭찬을 해야 합니다. 특히 남을 칭찬하는 사람을 칭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서경에 나오는 표현대로 ‘날이 모자라는 것처럼’ 하늘이 복을 내려줄 것입니다. 아니 스스로 복을 받고, 그런 복이 모이고 쌓여 이 끔찍한 사회가 조금씩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필자소개 :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